글씨를 써 주어.
누구한티?
니 형수한테.
인제는 안 온대잖여.
와, 한 번은 와. 벽장 속에 가방이 있거던.
뭐라 써?
큰놈은 속주머니에서 두툼한 책을 내밀었다. 큰놈이 펼쳐 놓은 쪽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작은놈은 밑줄 쳐진 데를 읽어보았다.

(살아가는 것이 슬픈 생각이 든다.)

작은놈은 슬픈 생각이란 말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큰놈은 접어 놓은 다른 쪽을 폈다.

(당신도 그러겠지만 슬퍼도 당신은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

큰놈이 그 문장들을 모아서 써 달라기에 작은놈은 공허히 고갤 저으며 화가 난 듯 손그림을 그렸다.
글씨는 다신 안 쓰기루 한 거 알잖여.
다시 쓰기루 하면 안 되나?
그걸루 형수를 붙잡진 못한단 말이네.
아름다이 보내줄 순 있지.

작은놈은 큰놈의 검은 동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름다이? 글씨가 그런 일을? 그럴 수 있으리란 생각을 작은놈은 한 번도 안 했다. 작은놈은 그제야 큰놈이 밑줄 그어 온 문장을 모아 보았다.

(살아가는 것이 슬픈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러겠지만 슬퍼도 당신은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

작은놈이 엎드려 큰놈이 밑줄 그은 문장을 다 옮겨 적었을 때 큰놈은 작은놈의 어깨를 툭, 쳤다.
이걸 갖고 떠나라고도 써 주어.
큰놈이 꺼내 놓은 건 나씨가 놓고 간 돈뭉치였다.
이건 형 거라고 했잖여.
작은놈은 글씨를 쓰던 걸 멈추고 또 한바탕 허공을 휘저으며 대들었다. 큰놈도 막무가내였다. 작은놈은 나씨에게 들은대로 형수는 형에게 이제 오지 않으니 돈을 형수에게 줘서는 안 된다 했고, 큰놈은 그 사내에게서 받아낸 돈을 자기가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 했다. 작은놈은 형수는 나쁘다 돌아오지 않는다만 저어댔다. 그러다가 손짓이 물끄럼해져 버렸다. 
그리두 내 맴을 모르겠니.
가슴을 탕탕탕, 치는 큰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 계속 치면 구멍이 뚫려도 뚫릴 것이었다. 작은놈은 그처럼 창백하고 그처럼 노염을 탄 큰놈을 그적 못 보았다. 슬픈 생각이란 저런 것인가.

누군들 내 옆에 있고 싶으까. 니 형수도 그것 뿐이야. 기찰 타구 먼 데로 가라구 그리 써 주어.
작은놈은 할 수 없이 덧붙였다. 
(살아가는 것이 슬픈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러겠지만 슬퍼도 당신은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 이 돈으로 기차를 타고 먼 데루 가라.)
그러고도 큰놈은 뭔가 부족한지 작은놈을 쳐다보았다. 
더는 안 쓰리라, 했지만 버티고 앉아 있는 큰놈에게 또 떠밀려서 작은놈은 삐툴삐툴 그리고 행복하여라, 를 말미에 써 넣었다. 그제야 큰놈은 작은놈이 차려 준 밥을 떠먹었다. 밥을 먹고 비척비척 걸어가는 큰놈을 따라가니 큰놈은 벽장문을 열고 형수가 챙겨놓은 가방을 열고 편지와 돈뭉칠 집어넣었다. 뚜껑을 닫으려던 큰놈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형수가 자주 입던 긴 치마를 꺼내서는 오래 들고 서 있었다. 



                                                                                                                   - 신경숙, <새야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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