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란드어과.
생활의 발견/대학시절 2008/03/28 23:42 |3월 4일 화요일. 광화문에서 탄 스쿨버스는 1시간이 넘도록 도로를 달린 끝에
마침내 희뿌연 창문 밖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라는 표지판을 보여줬다.
복학 날, 1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학교. 사월문학 진형 선배는
'장소가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대상이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나의 아름다운 학교'라고 했었지.
신기하기도 하지. 스쿨버스가 학교를 올라가던 그 짧은 순간,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나는 점점 어려지고 있었으니.
모현사거리를 지날 때는- 2006년, 학교 앞 고시원에 살던 내 모습이
기숙사를 거쳐 도서관으로 향할 때는- 2002년의 술 마신 어느 밤, 학교 앞에서 학생회관까지의 가파른 길을
헉헉, 입김을 토해내며 오르던 내 모습이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나, 나, 나... 열정적이었던, 혹은 치기어렸던, 항상 눈을 반짝이길 원했던 내 모습이,
바깥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스쿨버스는 어문관에 멈춰섰다.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한기. 역시 왕산은 아직 겨울이구나... 생각하며 어문관으로 향하다 문득 눈길이 멎은 곳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형 기념비. 정면에 쓰여있는 글귀는 'POLSKA 7736KM'.
이야, 그래. 작년에 우리과 2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고 했지. 그때 만든 기념비가 이것이구나.
그 앞에 서 본다. 그리고 다시 올려다본다. 'POLSKA 7736KM'.
나는 폴란드어과 01학번. 이 곳에서부터 7736KM나 떨어져있는 먼 이국의 언어를, 나는 왜 공부하려고 하는 것일까.
2001년의 첫 수업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폴란드어과에 오고 싶었던 사람?"
교수님의 차가운 질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한 사람만 빼고. 쇼팽을 좋아해서 폴란드어과에 들어왔다는, 내 감수성의 통로 효정이만 빼고.
하지만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아니었다.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왜 폴란드어과를 선택했을까. 나는 솔직해지기로 한다. 수능 점수에 맞추었을 때, 4년 동안의 내 관심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강고한 대학서열에 기가 질린 그때의 나는 그나마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최선의 '소속'만을 찾았다고.
한심한 인생이었고, 기막힌 상황이었다.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을 인용하자면, '4지 선다형의 교육은 4지 선다형의 진로만을 펼쳐놓았다'.
2001년도 1학기 내 평점은 0.47이었다. 7과목 중 하나만 D, 나머지 6과목은 전부 F가 나왔다. 전공은 모조리 F였다.
전공에 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의 나는 (어쨌든 내가 선택한 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내가 공부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재미가 없으니 실력은 뒤쳐졌고, 진도를 따라잡으려고 했으나 제풀에 지치고, 나중엔 따라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시험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대신 다른 활동으로 목마름을 채우려 애썼다. 등록금 투쟁에 동참하여 밤새워 강의실을 폐쇄할 때, 학보사에 들어가 기사를 쓸 때, 나는 '이것이 대학생활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생각했을 것이다. 내 나름의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구나. 난 나대로 애쓰며 살고 있어. 괜찮아.
나는 지금 우리과를 비하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어서 계속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지만, 친한 사람이 없는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종종 빠지려 하는 나를 그래도 계속 붙잡으려 노력한, 과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연락하려 애쓰고,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이해해주던 좋은 이들.
또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두려워하는 자는 죄가 있는 것인가?", "귀족과 안-귀족의 차이는?" 등의
바칼로레아 시험 같은 철학적 질문을 연이어 던지시는 정병권 교수님. 내가 수업에 매번 빠진 후 죄송한 맘으로 찾아갔을 때, "넌 다른 걸 잘하니까 괜찮아" 격려해주셨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수업 전에 읽어주시며 함께 문화를 공유하길 원하시는 최성은 교수님. 작년, 대학로에서 슬라보미르 모르첵의 연극 <미망인들> 포스터를 봤을 때, 교수님의 크레딧이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무섭게만 보였던 문법수업 김지영 교수님도, 이옥진 교수님도- 모두 사실은 우리과 선배님이신걸.
휴학하고 한동안 다른 학교로 갈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 덕에, 결국 나는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나는 4학년 1학기. 하지만 전공 수업은 모조리 1학년 1학기 수업을 재수강한다(해야한다)-0-
초급폴란드어번역연습 첫 시간. 이옥진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08학번들에게 말씀하신다.
"폴란드어는 굉장히 어려운 언어에요. 하지만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은 혼자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우리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마찬가지였어요. 교재에는 욕설을 적어놓고, 어떨 땐 '120년동안 국가가 없어졌으면(폴란드는 1795년 멸망했다가 1918년 다시 독립했다) 말도 없어져야지'하면서 푸념도 해보고.."
새내기들이 웃는 사이, 또 말씀하신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같이 보게 됐는지 아무도 몰라요. 수만 개의 대학교가 있는데 여러분은 그 중에 우리학교를 선택했고, 또 그 중에 32명이 정원인 우리과를 선택했잖아요...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인연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새삼스럽겠다, 창모야?" 웃으시며.
하아.
아니에요. 새삼스럽지 않아요. 이제 나 열심히 할 거거든요.
같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고, 같이 문화를 공유하고도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당신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그렇게 살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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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야 우리과 홈페이지 찾으려구 하다가 이리로 들어와버렸어.으흐흫
역시 넌 기자야. 글 참 잘 쓴다. 다음학기에 한국가면 보자~!
화이팅~!
흐흐 시연아 완전 보고싶고낫!
언능 공부하고 귀국하렴 :)
정병권 교수님, 프로파일을 찾다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때 무지 어려워했던 전공이였는데, 졸업할 당시에는 폴란드어 덕을 좀 봤지요.
7격 변화의 어려움을 극복해서 졸업 잘 하시기 바랍니다. 옥진이가 제 동기랍니다. ㅎㅎ
이야 :) 선배님이시군요! 영광입니다 ^__________^
격려 감사합니다! 이옥진교수님께 말씀드릴께요 :)
오빠 오빠가 제일아끼는 08송지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늦은밤에컴퓨터하다가 폴란드어과 치니까 오빠블로그나오네여
이야멋진둥???
살풋웃었다
ㅋㅋㅋㅋㅋ 송지야 방학은 잘 보내고 있지?
정말로 지나가다 들르게 되었습니다. 폴란드어는 대학 때 교양으로 잠시 들었는데..다시 한번 배워볼까 싶어 검색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확실히 학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친구들의 글 솜씨는 남다르더군요. 폴란드어 매력있는 언어입니다. ^^ 전 그냥..93년 대전 엑스포 때 폴란드관에 갔다가 폴란드인 아저씨가 친절하게 대해줬던 어린시절의 그 기억 하나만으로 대학 때 폴란드어 수업을 들었네요ㅎ 지금은 방학 때 단기연수로라도 폴란드에 갈까 생각 중입니다. 그럼..대학생활 잘 보내시고..건승하시길 ^^
답변이 늦어서 죄송하네염ㅠ-ㅠ 글 잘 읽어주셔서 고마와요 :)